퇴피삼사(退避三舍) - 충돌 피하기 위해 물러남, 양보하다.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퇴피삼사(退避三舍) - 충돌 피하기 위해 물러남, 양보하다.

퇴피삼사(退避三舍) - 충돌 피하기 위해 물러남, 양보하다.

[물러날 퇴(辶/6) 피할 피(辶/13) 석 삼(一/2) 집 사(舌/2)]

어떤 지위에 있다가 걸맞은 공적을 이뤘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더 영광된 자리를 갈망한다. 그러다 물러날 기회를 잃고 후진들에 양보하지 않았다가 두고두고 원망을 듣는 일이 많다. 여러 번 이 난에도 나왔던 시인 이형기 선생의 ‘落花(낙화)’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고 노래한다. 앞서 功成身退(공성신퇴)에서 소개했듯 무위자연의 老子(노자)가 공을 세운 뒤 스스로 물러나라고 특히 강조했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키지 못한다(金玉滿堂 莫之能守/ 금옥만당 막지능수)’, ‘공을 이루고 명성과 지위를 얻었으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천지의 도이다(功成名遂 身退天之道/ 공성명수신퇴 천지도).’

대치하고 있는 적군으로부터 멀리 피한다는 이 말은 충돌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물러앉거나 양보하는 것을 나타내는 성어다. 舍(사)는 옛날에 군대가 하루 30리를 행군하고 하룻밤 묵었는데 1宿(숙)을 가리켰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의 僖公(희공) 23년 조와 28년 조에 유래가 실려 있다. 晉(진)나라 獻公(헌공)에게는 驪姬(여희, 驪는 나귀 려)라는 애첩이 있었다. 자기 소생을 태자로 삼기 위해 여희는 왕에 모함하여 왕자 重耳(중이) 등 두 아들을 쫓아냈다. 중이는 이국땅을 떠돌아다니며 19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한번은 楚(초)나라에 갔을 때 成王(성왕)이 성대한 연회를 베풀며 환대했다. 앞으로 귀국하여 왕이 되면 꼭 보답 받고 싶다고 성왕이 말하자 중이는 대답한다. ‘만약 임금님의 은혜로 돌아가서 뒷날 진초 두 나라가 군사를 이끌고 중원에서 만나 싸우게 된다면 90리를 물러나서 호의에 보답하겠습니다(若以君之靈 得反晉國 晉楚治兵 遇于中原 其辟君三舍/ 약이군지영 득반진국 진초치병 우우중원 기피군삼사).’ 辟은 임금 벽, 또는 피할 피.

중이는 뒷날 진의 왕위에 올라 五霸(오패) 중의 하나인 文公(문공)이 되었다. 약속대로 문공이 宋(송)나라를 돕다 초나라와 싸우게 됐을 때 90리를 후퇴했으나 초의 장군 子玉(자옥)이 무서워 후퇴하는 줄 알고 계속 도전하자 우회작전을 펼쳐 격멸시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역사야 놀자 => http://app.danolja.co.kr/app.php

탄주지어(呑舟之魚) – 배를 삼킬 만환 물고기, 큰 인물의 비유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탄주지어(呑舟之魚) – 배를 삼킬 만환 물고기, 큰 인물의 비유

탄주지어(呑舟之魚) – 배를 삼킬 만환 물고기, 큰 인물의 비유

[삼킬 탄(口/4) 배 주(舟/0) 갈 지(丿/3) 고기 어(魚/0)]

배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물고기라면 대뜸 허풍이나 과장이라 생각한다. 코끼리를 삼킨 고래이거나 아들 개구리에게 황소 크기를 알려 주려고 몸을 부풀다 터져버린 어미 개구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허풍선이라는 뜻보다 실제 나룻배를 삼키는 물고기가 없는 것처럼 이 말도 針小棒大(침소봉대)한 비유로 큰 인물을 가리켰다. 좋은 의미의 인물이거나 盜跖(도척)과 같이 나쁜 의미의 악인을 가리킬 때도 이 말을 사용한다.

이 성어는 다른 비유와 대비하여 이치를 설명하면서 여러 곳에서 사용됐다. 먼저 중국 道家(도가)의 사상서 ‘列子(열자)’에 등장한다. 이 책은 戰國時代(전국시대)때 전설적 사상가인 열자의 사상과 철학을 문인들이 모은 것인데 楊朱篇(양주편)에 들어 있다. 양주는 자기 혼자만 쾌락하면 좋다는 이기적인 쾌락설을 주장한 사람이다. 양주가 梁(양)나라 왕을 만났을 때 작은 것에 신경 쓰지 않아야 큰 나라를 다스리기 쉽다며 말한다. ‘배를 삼킬만한 큰 물고기는 얕은 개울에서 놀지 않고, 큰 기러기는 높이 날아 더러운 연못에는 내리지 않습니다(吞舟之魚 不游枝流 鴻鵠高飛 不集汙池/ 탄주지어 불유지류 홍곡고비 부집오지).’ 汙는 더러울 오.

老子(노자)의 제자 庚桑楚(경상초)가 한 말이 ‘莊子(장자)’의 雜篇(잡편)에 실려 있다. 수레를 삼켜버릴 큰 짐승도 산을 내려오면 그물에 걸리는 재앙을 피할 수 없고, ‘배를 삼킬만한 큰 물고기도 휩쓸려 물을 잃으면 개미도 괴롭힐 수 있다(吞舟之魚 碭而失水 則蟻能苦之/ 탄주지어 탕이실수 즉의능고지)’면서 몸을 온전히 간직하려면 깊은 곳이나 먼 곳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碭은 넘칠 탕.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쓴 ‘淮南子(회남자)’에도 나온다. ‘배를 삼킬 큰 물고기라도 함부로 움직이다 물을 잃으면 땅강아지나 개미에 당하는 것이 그 거처를 떠났기 때문이다(吞舟之魚 蕩而失水 則制於螻蟻 離其居也/ 탄주지어 탕이실수 즉제어루의 리기거야).’ 主術訓(주술훈)에 실려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큰 인물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면이 보이기도 하지만 자칫 나쁜 환경에 휩쓸리면 망치기도 쉽다. 무엇보다 자신을 부지런히 닦아야 하고, 악에 물들지 않도록 주변의 각별한 신경도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역사야 놀자 => http://app.danolja.co.kr/app.php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산의 돌, 좋지 않은 돌로 도움 되는 일을 하다.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산의 돌, 좋지 않은 돌로 도움 되는 일을 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산의 돌, 좋지 않은 돌로 도움 되는 일을 하다.

[다를 타(亻/3) 메 산(山/0) 갈 지(丿/3) 돌 석(石/0)]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닥쳤을 때 흔히 선인들의 지혜를 구한다. 그들은 앞선 경험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므로 좋은 점을 본받을 수 있다. 반면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나쁜 점을 보고 교훈을 삼는다는 말이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나의 옥을 가는 데 도움 되는 돌이 될 수 있다는 이 성어다. 본이 되지 않은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의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反面敎師(반면교사)와 똑 같은 말이다.

약 3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전해지던 시를 수록한 ‘詩經(시경)’에 이 말이 처음 나온다. 小雅篇(소아편) 鶴鳴(학명)의 두 구절만 떼어보면 이렇다.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도 여기 돌을 가는 숫돌이 된다네,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도 여기 옥을 가는데 쓸 수 있다네(他山之石 可以爲錯, 他山之石 可以攻玉/ 타산지석 가이위착 타산지석 가이공옥).’ 錯은 섞일 착, 또는 맷돌 착. 여기서 돌은 소인에 비유하고 옥은 군자를 가리켰다.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가르친다. 대수롭지 않은 물건도 중요한 일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며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後漢(후한) 말기의 유학자 王符(왕부)도 이런 말을 남겼다. ‘돌로써 옥을 갈고 소금으로 금을 닦는데 물건에는 천한 것으로 귀중한 것을 다스리며 더러운 것으로써 좋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且攻玉以石 洗金以鹽 物固有以賤理貴 以醜化好者矣/ 차공옥이석 세금이염 물고유이천리귀 이추화호자의).’ 난세에 처하여 세속에 영합하지 않고 문란한 정치를 비판하여 쓴 책 ‘潛夫論(잠부론)’에서다.

이와 같이 他山之石 可以攻玉은 처음에는 옥을 잘라 갈고 다듬어 닦는다는 切磋琢磨(절차탁마)와 함께 예부터 수양을 위한 명구로 많이 사용돼왔지만 후세로 가면서 본받아선 안 되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있는 스토리 보기 : humorstory.kr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슬플 측(⺖/9) 숨을 은(阝/14) 갈 지(丿/3) 마음 심(心/0)]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 인해 악하게 된다. 孟子(맹자)의 性善說(성선설)이다.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선한 본성을 갖고 태어나기에 남의 고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그것이 仁義禮智(인의예지)의 근본을 이루는 四端(사단)이란 이야기다. 이에 반해 荀子(순자)는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하며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그대로 두면 파멸하기 때문에 禮(예)로써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대조적이다.

맹자는 누구나 남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며 재미있는 어린아이와 우물 이야기를 예로 든다. 公孫丑(공손추) 상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게 된다(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견유자장입어정 개유출척측은지심). 怵은 두려워할 출, 惕은 두려워할 척.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자 공손추에게 문답을 통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강조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측은지심 인지단야 수오지심 의지단야 사양지심 예지단야 시비지심 지지단야).’

이 세상에 처음 오는 어린애의 성품이 성선인지 성악인지 측정할 수는 없다. 연쇄살인마나 강간 살인범같이 이 세상에 해악만 끼치는 사람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진이나 화재, 수해의 재난을 입은 이재민들, 끝없는 행렬의 난민들에게 국가가 나서기 전에 일반 시민들이 줄이어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볼 때는 선하게 태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와 상식이 함께하는 역사야 놀자 => http://app.danolja.co.kr/app.php

찰나(刹那) - 매우 짧은 시간, 10-18승인 아주 작은 숫자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찰나(刹那) - 매우 짧은 시간, 10-18승인 아주 작은 숫자

찰나(刹那) - 매우 짧은 시간, 10-18승인 아주 작은 숫자

[절 찰(刂/6) 어찌 나(阝/4)]

인생은 덧없이 짧다고 할 때 刹那(찰나)와 같다고 말한다. 매우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대명사가 된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梵語]를 음역한 ksana(크샤나)에서 나왔다. 叉拏(차나)라고도 표기하며 一念(일념)이라는 뜻으로 번역한다고 한다. 찰나는 또한 작은 수를 나타내는 수사이기도 한데 이 난에 소개했던 彈指(탄지)의 10분의 1이 된다. 1보다 작은 수를 나타내는 割分厘毛絲(할푼리모사) 까지는 더러 사용하지만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사이인 탄지가 10-17승이고 찰나는 그보다 더 작은 10-18승을 말하니 상상이 되지 않는 숫자다. 이름이 붙은 수 중에서 가장 작은 淸淨(청정)은 10-21승인데 소수점 아래 0이 20개 붙고 1이 나온다.

찰나가 처음 유래한 곳과 나타내는 길이가 조금씩 다르다. ‘阿毘達磨大毘婆沙論(아비달마대비바사론)’ 불교경전에는 젊은 사람 둘이서 가느다란 명주실 한 올을 양쪽에서 당기고 칼로 명주실을 끊었는데 완전히 끊어지는 시간이 64찰나로 나온다. 우리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120찰나라고 하는데 인식할 수도 없는 사이에 끊어진 셈이다. 상상이 안 되는 수이지만 조금 더 옮겨보자.

중국에 찰나와 탄지라는 말이 전해지게 된 것은 인도에 유학을 한 玄獎(현장) 법사였다. ‘120찰나가 1달찰나이다(百二十刹那爲一怛刹那)’라고 한 사람도 그였다. 60달찰나는 1臘縛(납박), 30납박은 1牟呼栗多(모호율다), 30모호율다는 1晝夜(주야)로 24시간이 된다. 이를 거꾸로 역산하면 1찰나는 75분의 1초, 약0.013초가 된다. ‘僧祇律(승기율)’이란 불교론서의 계산법에는 20念(념)이 1瞬(순), 20순이 1彈指(탄지), 20탄지가 1臘縛(납박), 20납박이 1須臾(수유)가 되고 이 경우 1념은 0.018초가 된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찰나에 생기기도 하고 찰나에 없어지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만물이 1찰나마다 생성했다가 소멸하고, 다시 생성하며 계속된다고 刹那生滅(찰나생멸)이라고 한단다. 찰나의 생명, 찰나에 와서 찰나 동안 살다가 찰나에 가는 인생이다. 서로 아옹다옹 다투며 잘났다, 못났다 경쟁하는 것이 어떤 인생일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역사야 놀자 => http://app.danolja.co.kr/app.php

질풍경초(疾風勁草) -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강한 풀, 꿋꿋한 절개를 가진 사람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질풍경초(疾風勁草) -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강한 풀, 꿋꿋한 절개를 가진 사람

질풍경초(疾風勁草) -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강한 풀, 꿋꿋한 절개를 가진 사람

[병 질(疒/5) 바람 풍(風/0) 굳셀 경(力/7) 풀 초(艹/6)]

풀은 약하다. 건드리면 스러진다. 그러나 어깨를 겯고 힘을 합치면 적장을 잡고 원수를 갚게 해준다. 結草報恩(결초보은)이 말해주는 고사다. 풀은 약하지만 생명력은 질기다. 보통 백성을 말할 때 民草(민초)라 하는데 바로 떠오르는 시가 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다. 이처럼 질긴 생명력을 나타내는 속담도 있다. ‘빠른 바람에 굳센 풀을 안다’는 마음의 굳은 의지와 절개는 시련을 겪고 나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이와 똑 같은 뜻의 말이 모진 바람(疾風)에도 꺾이지 않는 강한 풀(勁草)이란 이 성어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를 당해도 뜻을 꺾거나 굽히지 않는 절개 있는 사람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모진 바람이 불면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역경을 겪어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後漢(후한)의 명장 王覇(왕패)의 의리를 치하해서 光武帝(광무제)가 말한 데서 나왔다.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 왕패전에 내력이 실려 있다.

외척 王莽(왕망, 莽은 풀 망)이 漢(한)을 멸망시킨 뒤 新(신)나라를 세워 개혁정책을 펼쳤으나 실패하고 나라는 더 어지러워졌다. 하급관리를 지내던 왕패가 친구들을 이끌고 훗날 광무제가 되는 劉秀(유수)의 휘하에 들어갔다. 유수가 어진 인재들이라며 받아들여 곳곳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유수가 허베이[河北]성을 평정할 때 고난이 이어지자 왕패를 따랐던 수십 명이 대열을 이탈했다. 유수가 개탄하며 왕패에게 말했다. ‘나를 따랐던 사람이 모두 떠나고 그대만이 남았소. 세찬 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을 알 수 있는 법이오(從我者皆逝 而子獨留 疾風知勁草/ 종아자개서 이자독류 질풍지경초).’

유수가 본대로 왕패는 죽음을 무릅쓰고 주군의 목숨을 구한 적이 여러 번 있었고 더욱 신임을 받았다. 어려운 시기를 같이 견뎌낸 동지들이 더욱 뜻을 같이 하여 목표한 바를 잘 펼칠 수 있다. 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드는 것을 알 수 있다는 歲寒然後 松栢後凋(세한연후 송백후조)란 말도 사람됨을 나타낸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와 상식이 함께하는 역사야 놀자 => http://app.danolja.co.kr/app.php

주마간화(走馬看花) – 말을 타고 달리며 꽃을 구경하다, 대충 보고 지나가다.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주마간화(走馬看花) – 말을 타고 달리며 꽃을 구경하다, 대충 보고 지나가다.

주마간화(走馬看花) – 말을 타고 달리며 꽃을 구경하다, 대충 보고 지나가다.

[달릴 주(走/0) 말 마(馬/0) 볼 간(目/4) 꽃 화(艹/4)]

온갖 생물이 흐드러진 萬化方暢(만화방창) 따뜻한 봄날에 느긋이 말 등에 올라타고 산천경개 구경한다고 하면 무엇이 느껴질까. 신선이 따로 없이 좋은 팔자라고 모두들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말을 타고 달리며(走馬) 꽃구경을 한다(看花)면 아름다운 꽃을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다. 흔히 走馬看山(주마간산)으로 잘 알려진 이 성어는 ‘수박 겉핥기’란 속담과 같이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대충대충 훑고 지나간다는 뜻으로 굳어졌다. 처음 꽃으로 사용될 때는 일이 뜻대로 되어 마음이 즐겁다는 뜻이었는데 의미하는 바가 달라졌다.

중국 中唐期(중당기) 시인으로 유명한 孟郊(맹교, 751~814)는 韓愈(한유)와 가깝게 지내며 復古主義(복고주의)에 동조한 작품을 많이 썼다. 가정적으로 불우하여 청년 시절 청렴한 생활을 하면서 벼슬에는 전혀 뜻이 없이 시작에만 열중했다. 어머니의 권고에 못 이겨 41세가 되던 해 과거에 응시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하고 주변에서 온갖 냉대를 다 받았다. 두 번째 도전에서도 낙방하고선 ‘두 번이나 서울 땅을 밟고서도 또 떨어져, 헛되이 눈물 머금고 꽃만 바라보네(兩度長安陌 空將淚見花/ 양도장안맥 공장루견화)’라며 피눈물을 흘렸다.

陌은 길 맥. 그러다 46세 때에 겨우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는데 세상인심이 급변했음을 실감했다. 맹교가 어느 술좌석에서 또 꽃을 등장시켜 각박한 민심을 풍자했다. ‘登科後(등과후)’란 시의 부분을 보자. ‘봄바람에 뜻을 얻어 세차게 말을 모니, 하루 만에 장안의 꽃을 다 보았네(春風得意馬蹄疾 一日看盡長安花/ 춘풍득의마제질 일일간진장안화).’ 말을 타고 달리며 장안의 꽃을 다 구경했다는 것은 하루 만에 좋은 것을 모두 맛보았다는 은유로 이전 낙방했을 때와 천양지차를 실감했다는 표현이다. 앞부분의 春風得意(춘풍득의)란 말도 벼슬을 얻게 된 기쁨을 표현하는 성어가 됐다.

다른 목적이 없이 관광을 할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구경하는 것이 더욱 흥이 난다. 하지만 학업이나 사업을 할 때는 목표가 있고 이익이 걸려 있어 대충하면 실패가 기다린다. 이것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있는 스토리 보기 : humorstory.kr

작사도방(作舍道傍) - 길옆에 집짓기, 의견이 많아 얼른 결정하지 못함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작사도방(作舍道傍) - 길옆에 집짓기, 의견이 많아 얼른 결정하지 못함

작사도방(作舍道傍) - 길옆에 집짓기, 의견이 많아 얼른 결정하지 못함

[지을 작(亻/5) 집 사(舌/2) 길 도(辶/9) 곁 방(亻/10)]

어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때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막상 결정이 늦으면 갈피를 못 잡는다. 이 사람 말도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다. 이럴 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우리 속담이 정확히 나타낸다. 주관하는 사람이 없이 사람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집을 짓는데(作舍)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길 옆 터에서 공사(道傍)를 한다는 이 말은 지나가는 이 사람이 한 마디, 저 사람이 한 마디 하는 바람에 결정하지 못하고 부지하세월이 된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 1808~1866)의 백과사전 ‘松南雜識(송남잡지)’ 중에서 방언류에 ‘길가에 집을 지으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다 듣다 보니 삼년이 걸려도 이루지 못한다(作舍道傍 三年不成/ 작사도방 삼년불성)’는 말이 나온다. 실제 훨씬 그 이전부터 비슷한 뜻으로 사용된 예가 나온다. 서양 동화 중에서 잘 알려진 ‘팔려가는 당나귀’도 같은 가르침이다. 부자가 당나귀를 팔러 가는데 길가 사람들의 말을 듣고 끌고 가다, 타고 가다, 메고 가다 나중에는 개울에 빠뜨리고 만다.

가장 오래된 중국의 시집 ‘詩經(시경)’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나온다. ‘마치 길가는 사람에게 집 지을 일 의논함과 같으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리로다(如彼築室于道謀 是用不潰于成/ 여피축실우도모 시용불궤우성)’라고 했다. 潰는 무너질 궤. 小雅(소아)편에 실려 있는 小旻(소민)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築室道謀(축실도모)는 똑 같은 뜻으로 사용됐다. 거의 비슷한 표현은 宋(송)의 역사가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나온다.

후한 3대 章帝(장제) 때의 학자 曹褒(조포, ?~102)가 왕명을 받고 禮制(예제)를 정리하고 冠婚凶吉(관혼흉길)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생들마다 자기주장을 펼쳐 그들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며 장제가 힘을 실어준다. ‘속담에 이르길 길가에 집을 지으면 삼년가도 못짓는다(諺言作舍道邊 三年不成/ 언언작사도변 삼년불성)’고 했으니 밀고 가라는 의미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있는 스토리 보기 : humorstory.kr

임인유현(任人唯賢) - 인품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 일을 맡기다.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임인유현(任人唯賢) - 인품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 일을 맡기다.

임인유현(任人唯賢) - 인품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 일을 맡기다.

[맡길 임(亻/4) 사람 인(人/0) 오직 유(口/8) 어질 현(貝/8)]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서 독단적으로 조직을 이끌어나갈 수는 없다. 자격을 갖춘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능력을 발휘할 때 그 집단은 빛을 발한다. 이럴 때 자주 인용되는 ‘人事(인사)가 萬事(만사)’라는 말은 잘못 되었을 때 비아냥거리는 ‘인사가 亡事(망사)’라는 말이 더 유명할 정도로 인사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능력은 보지 않고 가까운 사람을 임용하는 任人唯親(임인유친), 떠도는 이야기만 듣고 사람을 들이는 以言取人(이언취인), 그리고 겉모습인 용모만 가지고 사람을 쓰는 以貌取人(이모취인) 등은 망사의 지름길이다.

오직 능력과 인품만을 보고 사람을 뽑는다면 가장 이상적이라는 이 성어는 어진 사람이나 유능한 사람에게 지위를 양보해 준다는 推賢讓能(추현양능)과 통한다.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중국 고대의 기록 ‘書經(서경)’에 같은 뜻의 글이 실려 역사도 오래 됐다. 商(상)나라의 20대 왕 武丁(무정)은 현명한 재상에게 정치를 맡겨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잡았다. 담장을 쌓는 노예 출신의 傅說(부열)을 발탁하여 재상으로 삼고 충언을 귀담아들은 왕도 무정이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모두 관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면서 부열이 무정에게 고한 말이 說命(열명) 중편에 나온다. ‘벼슬은 사사로이 친한 사람에게 주어서는 안 되고 능력 있는 이에게 주시고(官不及私昵 惟其能/ 관불급사닐 유기능), 작위는 나쁜 덕을 가진 사람에게 주시지 말고 오직 현명한 이에게만 주십시오(爵罔及惡德 惟其賢/ 작망급악덕 유기현).’ 昵은 친할 닐.

중국 역사상 최고의 유능한 재상으로 꼽는 管仲(관중)이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어떻게 보답하겠는지 묻는 관원에게 대답한다. ‘나는 현명하고 능력이 있는 자를 등용하여 공적이 있는 자를 평가할 따름이오(我且賢之用 能之使 勞之論/ 아차현지용 능지사 노지론).’ 작은 도움을 주고서 크게 바라는 사람은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말한 것이다. ‘韓非子(한비자)’ 外儲說(외저설) 左下(좌하)편에 있는 이야기다. 儲는 쌓을 저.

조선 正祖(정조) 대왕은 탕평책을 도입하며 ‘천하의 일은 적임자를 얻어서 맡기면 절반 이상 이뤄진 것(天下事 得人而任之 思過半矣/ 천하사 득인이임지 사과반의)’이라고 했다. 이처럼 인재 등용의 좋은 말이 많아도 오늘까지 인사에 잡음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실천할 의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와 상식이 함께하는 역사야 놀자 => http://app.danolja.co.kr/app.php

일엽지추(一葉知秋) - 나뭇잎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알다.

- Posted in 고사성어 by

enter image description here

일엽지추(一葉知秋) - 나뭇잎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알다.

일엽지추(一葉知秋) - 나뭇잎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알다.

[한 일(一/0) 잎 엽(艹/9) 알 지(矢/3) 가을 추(禾/4)]

나뭇잎 한 잎(一葉)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안다(知秋)는 말은 작은 움직임만 보고도 전반적인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만히 앉아서 천하의 움직임을 감지한다는 천리안을 갖지 않았더라도 예지력은 뛰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영국 격언이 말해주는 것처럼 사소한 증거를 가지고 전체를 파악하지 말라는 경고도 담고 있다.

이처럼 중의적으로 쓰이는 성어가 나타나는 곳은 많다. ‘文錄(문록)’이라는 책에 唐(당)나라 무명시인의 시구라며 인용한 ‘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산승불해수갑자 일엽낙지천하추/ 산 속 스님은 세월을 헤아리지 않고도,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가 유명하다. 같은 당나라 李子卿(이자경)의 ‘聽秋蟲賦(청추충부)’라는 시에는 ‘一葉落兮天地秋(일엽낙혜천지추/ 나뭇잎 한 잎이 떨어지니 천지는 가을이네)’라는 구절도 있다.

또 중국 前漢(전한)의 劉安(유안)이 쓴 ‘淮南子(회남자)’에는 고깃국이 끓고 있는데 그 맛이 궁금하다면 국을 다 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보면 한 해가 장차 저물려는 것을 알 수 있고, 병 속의 물이 언 것을 보면 천하가 곧 추워지리라는 것을 안다(見一葉落而知歲之將暮 覩甁中之氷而天下之寒/ 견일엽낙이지세지장모 도병중지빙이천하지한)’고 했다.

覩는 볼 도. 조선 후기의 문신 心庵(심암) 趙斗淳(조두순)도 비슷하지만 더 멋진 시구를 남겼다. ‘오동 한 잎 날리자 천하가 가을이라, 가을바람 가을비만 외로운 누각에 가득하네(一葉梧飛天下秋 秋風秋雨滿孤樓/ 일엽오비천하추 추풍추우만고루).’

성어의 뿌리야 어떻든 예민한 감지력은 항상 간직하는 것이 좋지만 또 한편으로 한 부분만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어리석음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짧은 가을은 후딱 지나쳐 버릴 테니 이젠 결실을 생각하여 거두어들이고 저장하는 寒來暑往 秋收冬藏(한래서왕 추수동장)의 천자문 구절도 생각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역사야 놀자 => http://app.danolja.co.kr/app.php

Page 2 of 10